|
다산의 사람 그릇 | 관리자 | 2019-10-17 06:04:11 원문 URL : http://coreainfo.net/bbs/?tbl=artnews&mode=VIEW&num=123 |
||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중앙로 1455 대우시티프라자 802호 레몬북스 ? 저 자 : 진규동 ? 출판사 : 레몬북스 소개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하여 저술하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대실학자이며 위대한 사상가인 다산 선생의 사람 그릇과 학문적 위업, 사상과 정신을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118차례 이상 다산초당을 오르내리며 다산과의 나눈 마음속의 대화를 바탕으로, 보고 듣고 학습한 것을 보통사람들이 부담 없이 다산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집필하였다. 독자들은 이제 어려운 다산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18년 동안 유배라는 형벌의 두려움과 공포, 우울한 마음과 생각을 극복하고 다산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적 결실을 거두었으며 애민과 애정, 위국과 충정으로 가득 찬 그의 사람 그릇을 되돌아보며 현실을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요약 ◆ 다산의 사람 그릇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위로와 힐링을 현재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노인 빈곤, 복지 취약, 정부 불신 등의 지표는 가장 열악한 나라들의 반열에 놓여 있다. 이러한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상실감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에 대한 반응과 느낌 또한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 충격이 크고 작은 차이일 뿐 그 충격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는 점이다. 실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들 중 상실이 가장 큰 요인이다. 다산은 18년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사약이 내려질지 모르는 공포감과 초조함, 절망감과 우울과 분노를 그리움, 간절함, 사랑, 위민, 애국으로 승화시켜 견디고 버틸 수 있는 동력으로 삼았다. 다산이 그 찬란했던 귀족생활에서 하루아침에 폐족으로 추락하여 1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외딴섬과 같은 유배지에서 보낸 시련과 고난은 현재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모든 것이 풍부한 지금이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서 다산의 18년 유배 생활에서 남겨진 메시지와 사람 그릇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위로와 힐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날로 복잡하고 힘든 시기, 다산의 지혜를 통해서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의 여정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일생을 망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서 주택과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내려놓은 ‘7포 세대’에서 생명이 포함된 ‘8포 세대’,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상실과 우울의 18년 유배 생활 속에서도 세계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람 그릇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현실을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다산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 가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마치고 말 뿐이다.”라고 하여 순간의 분노와 화를 다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방 관료의 부조리나 부정부패에 분노하지 않고 이를 수수방관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위대한 분노로 이 세상을 정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책 속으로 다산은 만덕사 서쪽에 있는데, 처사 윤박의 산정이었다. 바위에는 정석(丁石) 2자를 새겨 표지하였다. 칠언시로 지은 다산4경의 맨 첫 번째는 초당 왼편 위쪽에 있는 바위에 새긴 정석(丁石)이다. 정석이 의미하는 것은 다산 정약용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다산이 존경하는 인물 4사람의 뜻을 새긴 것이다. 그 첫째가 마을 어귀의 돌에까지 인사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산 송나라 때 학자 미불이고, 둘째는 마흔한 살에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귀거래사’의 시인 도연명이고, 셋째는 담장을 쌓는 노예 신세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은나라 부열이고, 마지막이 백성을 위해 수로를 건설할 때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잡초 무성한 동굴에서 잠을 자며 일한 우임금이다. <다산초당 설경> 다산이 이렇게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 시련과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또 다른 원동력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술과 자연과 시이다. 다산은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자신의 울분과 한을 책 속에 묻기 시작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언젠가는 볼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길을 가면서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보고, 느끼고 분한 것들은 시로 엮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벗이 되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분노와 유배의 시련을 시와 글 속에 묻으면서 울분과 우울함을 밝혀 나갔다. “내가 죽은 뒤에 아무리 정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진설해 놓고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어주고 내 책 한 장(章)을 베껴주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다산은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제자에게 “이 시는 절대로 남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라며 세상에 알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다산은 제자의 시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시 “애절양”의 시를 쓰게 되었다. 그동안 관료 시절 암행어서와 황해도 곡산 부사로 있을 때 많은 처참한 상황을 보긴 했어도 이렇게 처참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처절한 심정으로 다산은 한 구절 한 구절 써 내려가며 아전들의 가혹함과 관청에서 하는 짓거리에 대한 분통을 삭히고 있었다.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蘆田少婦哭聲長 저자 소개 ■■■ 자칭 다산심부름꾼이다.
┃프롤로그 ?┃18년 유배 생활, 왜 우울증이 없었겠는가 …… 8 PART 1 : 금수저의 황금시대 PART 02 : 무너지는 건 한순간 PART 03 : 자연만이 그를 감싸주네 PART 04 : 사색과 위민의 시간 PART 05 : 그리움과 사랑의 속삭임 PART 06 : ‘나라다운 나라 백성다운 백성’ 다산의 꿈 PART 07 : ‘다산학의 산실’ 다산초당 |
||